이 게시물은 음악을 잘 모르는 평범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느낌이다.


사실, 지금의 이 시대는 음악만화를 보기엔 정말 더없이 좋은 시대가 아닌가 싶다.

굳이 노다메 칸타빌레 처럼 일일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주지 않아도, 4월은 너의 거짓말처럼 애니로 만들어주지 않아도, 유튜브에 이름만 쳐 넣으면 그 음악의 연주를 다양한 버젼으로 들을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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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쪽에도 유명한 음악만화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노다메 칸타빌레.'


만화가 애니도 있고 드라마화도 되었고 영화도 나왔으며 음반도 따로 발매되었다.

주연인 우에노 주리와 타마키 히로시 역시 너무나도 익숙한 배우이고...


Nodame Cantabile - Best 100 Collection 은 이 링크를 누르면 정리되어 있다.


딱히 음악만화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이 만화를 애니나 드라마, 영화 어느 하나로도 접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스토리의 재미도 그렇고, 실사화의 경우는 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적합도도 발군이고 어느하나 빠질곳 없어보인다.

 

그래도 음악과 관련된 만화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 하나를 추천한다면 노다메 칸타빌레가 가장 많이 언급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보니, 음악을 소재로 하는 만화가 별로 없기도 하다. ^^;;;)

너무 유명하니 추천만 하고 건너뛰고......





'4월은 너의 거짓말.'


일본 청소년 권장도서라는 열다섯 동맹과 비슷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애니화 및 영화화 되었는데 애니는 강추다. 오히려 만화보다 나을지도... 역시 음악 만화는 음악을 들을수 있을때 제대로 읽은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영화는 보지 않았다.

일본이 실사화로 망친게 어디 한두해 일인가 만은... 이 4월은 너의 거짓말의 실사화에 대한 평가는 좀 심각한것 같다.

 

개인적으론 음악만화로는 가장 좋아하는 만화인데 핸드폰의 밸소리도 이 작품에 나오는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을 쓰고 있다.

좋은 대사들이 꽤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중에서 사랑의 슬픔에 대한 대사도 참 기억에 남는다.

 

(어린시절의 코세이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사랑의 기쁨'이랑 '사랑의 슬픔'이 있는데 왜 맨날 '사랑의 슬픔'만 쳐?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엄마가 답한다.)

그건 말이지 코세이... 슬픔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란다

 

라던지....

 

 

아리마선생님.. 닿았을까요?

응... 닿았어...

.

.

.

아리마 선생님은요? 한방 먹여줬어요?

응... 아마도...... 평생 못잊을만큼...

 

라던지......

 

 

밑의 이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도 참 좋아하는 부분의 하나이다

 


 

이 만화는 예전에 홈피에 썼던거니까 링크로 대체.


4월은 너의 거짓말


4월은 너의 거짓말 (애니).

 

 

 

'피아노의 숲'

 

최근에 완결이 났다.

숲의 버려진 피아노를 통해 피아노를 접한 한 소년이 사고로 손의 감각을 잃어버린 한 피아니스트의 만남을 통해 피아니스트로 자라나는 과정을 그렸다.

 

애니화도 되었고 노다메 칸타빌레와 더불어 상당히 유명한 작품이다. 극중 도입하는 곡들도 스토리에 잘 녹아드는 느낌.

이 만화의 음악들은 피아노의 숲 Best Piano Collection (링크 참조)로 발매되었는데 3장의 cd 로 이루어져 있다.

 

초중반도 아주 좋았는데 왠지 종반이 이상하게 뭔가 엮어넣으려다 급하게 끝내버린 느낌이다.

(본지 좀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숲의 악당들이 뭔가 할것처럼 스토리가 레코드판 튀듯이 튀다가 갑자기 원래의 스토리로 복귀해선 ...

 

애니는 만화의 초반부만 다루고 있다. 초등학교 콩쿠르까지...

그러다보니 나머지 음악들은 위의 링크에 있는 앨범을 구하던지 혹은 유튜브를 참조해야 한다.

 

 


 


'하늘에 울리는'




바이올린을 지망하는 남자주인공과 지휘자를 꿈꾸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이 만화는 타 만화에 비해 스토리적인 재미는 좀 떨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도 다른 음악을 소재로 한 만화들에 비해  슬쩍슬쩍 건드리고 지나가는 음악작품들은 많지만 깊게 차용하지는 않고 그저 만화적 분위기로만 이를 묘사한다. 


또한, 타 만화에 비해 약간 전문적인(???) 모습을 보이는게 아닌가 싶은것도 있는데 예를들면, 바이올린은 기타의 프렛같은게 없어 정확한 음계를 내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감각으로 커버해야 하는 영역이라 힘들다. 라는 해설을 '하늘에 울리는'은 배경을 가지고 설명하는데 반해 '푸른 오케스트라'는 그냥 아... 저런데도 잘하는거 보면 귀가 좋은가? 하고 넘어가 버린다.


그러니까... 다른 음악 만화들이 보다 더 음악을 소재로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면 이 만화는 어느 특정 곡이 아니라 그저 전체적인 분위기를 소재로 많이 끌어들이고 있다.


같은 음대 생활을 소재로 끌어들이지만 노다메 칸타빌레가 그냥 에피소드의 배경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면 이 만화는 음악의 지식을 설명하는 재료로 사용한다.


반면에 스토리를 풀어가는 메인 음악은 극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나중에는 나올지도...) 노다메 칸타빌레는 베토벤 7번이 전체적인 스토리를 관통하고 있고 4월은 너의 거짓말과 피아노의 숲은 그렇지는 않지만, 유명한 곡들이 부분부분에서 악센트처럼 역할을 하지만 오히려 전문성을 더 끌어들이는것 같은 이 만화는 그런점에서는 덜한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음.알.못 이다.)


뭐랄까.. 약간 오락가락하는데... 미술을 다루는 '갤러리 훼이크'는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곁들이지만 (또다시 말하지만, 나는 미.알.못 이기도 하다.) 극적인 재미도 있는데 반해 그런 부분이 모자란것 같은 느낌인데 그렇다고 손을 땔만하지는 않다.


굳이 따지자만, 극적인 부분의 높낮이가 좀 낮은 느낌이랄까... 더불어 익숙하고 화려한 음악들이 소재로 들어있지 않아서일지도...

하지만, 꽤 괜찮은 만화가 아닌가 싶다.


(여담으로 미리 써넣자면, 갤러리 훼이크도 그렇고 이런류의 전문성을 빌려쓰는 만화에서는 가끔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문적인 공부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잘못된 지식이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예를 들면 갤러리 훼이크의 경우는 베르메르를 펠 메일이라고 오기하고 있다.)




'푸른 오케스트라'

 


 

스토리는 비교적 4월은 너의 거짓말 비슷하게 출발하는거 같은데 전개도 빠르고 가볍다. 스토리적으로 뭔가 반전이라던가 극적인 어두움 같은건 아예 없을거 같은 분위기. 격투 만화로 치면 원펀맨 같은 전개랄까......

 

어릴때부터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할만큼의 실력자였지만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아버린 한 소년이 여자아이를 만나면서 다시 바이올린의 세계로 돌아오는 과정은 4월은 너의 거짓말의 판박이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바이올린 솔리스트로서의 이야기가 아닌, 제목처럼 오케스트라에 녹아들어갈 모양새로 전개는 좀 달라질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 글의 다섯 만화중에선 가장 최신작일것이다.

현재 진행도 그다지 많이 되진 않았는데 사실, 음악만화로서의 재미보다는 그냥 일반만화가 적당히 음악을 가져다 쓴 느낌정도인데 그럭저럭 재밌다.


아다치 미츠루의 야구만화들이 대체로 야구를 묘사한다기 보다는 청춘물에 소재로 적당히 야구를 버무려 놓은듯한 느낌인데 이 만화의 출발이 약간 그런 느낌이다.

 

앞으로 전개가 더 되어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현재까지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중.

 

이 밑은 만화 초반 오케스트라 소개에 나오는 경기병 서곡

 

 

 

 

Posted by 너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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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계 중산층의 몰락
국내도서
저자 : 폴 크레이그 로버츠(Paul Craig Roberts) / 남호정역
출판 : 초록비책공방 20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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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읽은 책중엔 꽤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저자는 자유무역의 약점이라든가 케인즈주의의 약점 등등에서부터 버니 샌더스까지...
이책은 광장히 재미있는 내용들을 헤집어간다.

덧붙이면, 신자유주의를 논하거나 그러지 않는데 그건 이책이 그런 용도의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어렵지는 않지만 어느정도의 개괄적인 경제학의 면들에 대한 상식이 있는게 책을 더 재밌게 읽을수 있는 조건인것 같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기득권의 권력이 결합된 요즘 형태의 인간 경제활동의 발전이라는 것들의 상당수는 주인없는 부나 의식하지 못하는 손해들을 대중들이 감당하면서 특정인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형태이다. 
그런 방식이 아니면 발전이라는 이름의 진행은 크게 메리트가 없으며 따라서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개괄적인 전개과정을 보면 이렇다.
물가 (집값 등)와 생활수준을 따라잡고 유지하기 위해 중산층은 여러가지를 투입했다.
배우자의 맞벌이와 자녀의 알바를 통해 가용자원을 모두 벌이에 투입했으며 연장근로수당을 위해 그 각각 구성원의 근로시간을 늘렸고 그것도 모자라서 지속적으로 커지는 부채를 떠안았다. 그 결과물인 막대한 부는 소수 상위층이 차지했으며 그건 빈부격차 라는, 너무 일상적이다보니 평이하게 마저 다가오는 한 단어로 축약된다. 

이제 경제는 단순히 수학과 정치학, 과학의 결과물을 를넘어 사회학, 심리학, 철학의 영역을 받아들이던가 붕괴하던가의 직전까지 온게 아닌가 싶다.

아마 2장을 읽는 사람들중 상당수는 괴리감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그 부분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의 그동안의 전체주의적이고 획일적인 경제사관에는 확실히 부합되지 못한다.

사실, 공장의 해외이전이 인건비 아비트라지에 지나지 않는건 누가봐도 상식이고 그게 자국인의 일자리를 줄이며 동시에 임금 하방압력을 주는건 인지하면서도 그게 나쁘다 라는것엔 어쩌면 불쾌감 까지 가질지도 모르겠다.

더우기, 경제학의 금과옥조같은 자유무역의 환상에, 요즈음 세계에 충격을 던져 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주장하는 무역장벽 재건 주장에 대한 거부감까지 곁들이면 이 책의 주장에 대해 짜증이 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역시 트럼프가 옳다고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신의 진리가 아닌바에는 항상 문제점은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유무역으로 이익을 독점하는 부류는 신자유주의의 기득권과 대체로 일치한다. 어려운점은, 그걸 막겠다고 한들 보호무역주의가 신자유주의 하에서 수탈당하는 사람들에게 득이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양극화 속에서의 기득권의 존재 및 발전은 사회 구조적 문제이고 그들은 경제가 어떤 주의이건 이득을 챙긴다.
결국, 양극화를 완화하는건 경제체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이다.

이 책이 재미있는 부분은 또있는데, 국수주의와 합리적주장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잠시 넘나든다는 점이다. 이것은 독자에 따라 극명한 호불호가 될수도 있고 그냥 그런가보다가 될수도 있다.
뭐, 중후반에 살짝 위와 같은 부분이 사람에 따라 거부감이 있을수 있지만 후반에 다시 (나만의) 기대감을 충족하는 바, 나는 이 책을 아주 권할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날카로운 논리와 기존에 반하는 주장, 그리고 약간의 음모론적 요소(어떤 사람들에겐)까지 겸비한 경제대중서가 재미있지 않을 구석이 없지않은가?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런류의 경제서적들에 나오는 치열한 경제전쟁은 악이든 선이든 상당한 수준의 전투가 된다. 기득권과 기득권이 되고 싶은 자들, 그리고 선이라 믿고(맞든 틀리든) 행하는 자들의 전력을 다한 싸움이며 첨예한 논리와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치밀한 행동력이 투입된다.

이런 상황은 ... 무당의 신내림이 끼어들만한 여지가 있는 상황이 아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비정상이 먼저 주장한...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다음에나 참가할 수있는, 다른 차원의 전쟁인 것이다.
그게...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면 한숨만 짓게 되는 이유이다.
애초에... 깜도 안되는....

사실, 작금의 상황은 무지한 대중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대중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다만, 스스로 그 세가지를 못하게 되는 동안에 방치한 책임이 없지는 않으나, 대의민주주의가 잘못된 대중언론, 기존의 기득권과 결탁하는 순간 더이상 대중이 할 수 있는것은 없다.

Posted by 너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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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몰락
국내도서
저자 : 제임스 리카즈(James Rickards) / 최지희역
출판 : 율리시즈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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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출장길마다 단속적으로 읽는 나같은 독자애겐 좀 불리한 책이다.

내용 자체가 보기도 어렵고 번역이 매끄럽다고 느껴지지도 않기에 이걸 전회 읽던 기억을 되살려 가면서 읽기엔 부적합하다.

뭐, 책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할 수준의 독자가 아니기에 개인적인 소감들을 채워넣자면 

기축통화의 이권에 대한 독점이 영원히 유지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고 그게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책과는 좀 생각이 다르긴 하다.



경제정책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을 언급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쉬운 책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핵심은 역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위치가 위협받는다는 내용이지만 그 전개과정이 사실 만만치는 않다보니 큰 줄기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세부사안들까지 파악하기가 쉽지않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의미라면은 이책보다는 베리 에이켄그린의 달러제국의 몰락 ( http://widesea.net/34 ) 이 더 좋았던듯 하다. 뭐, 세부적인 내용들은 다 잊어버렸지만... ^^;;;



좋은 착점이긴한데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꽤나 따라가기 어려웠던 책이다. 거기에는 번역 문장이 매끄럽게 와닿지 못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된다.

같은 논리를 전개하더라도 전문용어와 약어가 주로 사용되는지라 나같은 비전문가에게는 좀 답답한 구석이 있다.

제3부 통화와 부 같은 파트는 사실 매우 간결하고 중요하며 우리나라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너무 전문적인 수사들로 인해 난해하게마저 느껴진다.

결국, 대상이 일반 독자들이라기 보다는 논문 성격의 주장처럼 읽힌다.


번역이 좀 매끄럽지 못하다는건 이런 경우들이다.

p195 를 보면, 


"21세기 들어와 케인즈 이론의 모든 허점이 드러났다. 임금경직성은 특별한 경우로, 노동력이 생산성에 핵심요인으로 작용하며,

대체노동력은 존재하지 않고, 노동조합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또한, 글로벌화된 아웃소싱이 이루어지지 않고, 실업률은 비교적 낮은 상대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라고 씌여있는데,


저 문장에서 위 상황이라면 노동조합이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경우에 가능하다 라는 뜻이 된다.

갖고 있다, 라고 끊어버리면 글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저런곳에 이런류의 어색함들이 좀 있어보인다.



148p 에서 시작되는 폰지사기가설과 과잉투자에 대한 주장은 사실 우리나라에도 대입된다고 생각한다.

150p 에서 나오는 투자중심경제가 소비중심 경제로 이행되어야 하는 부분은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과소한게 

왜 문제가 되는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며 과오투자의 문제는 4대강과 자원외교가 만들어낼 상처가 어떤것인지를 말해준다.

P166의 소비절벽은 완전한 우리의 현실이다

저자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게, p185~186 에서의 임금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개인적으로는 저자보다는 폴쿠르그먼에 동의한다. 내겐 이런 부분은 행동경제학의 변이 정도로 생각된다.



지역차이에서 명목임금을 확연하게 차이를 둘 만큼의 격리는 화폐통합의 단일성과는 상반된다고 생각된다..

즉, 화폐가 통일된 정도의 사회는 명목임금상의 차이가 마치 서로 외국인것마냥 벌어지기 힘들고, 

그런 차이가 있다면 애초에 화폐만의 통합이 오래 유지될수 있을까 싶다.

미국을 예로 들때 각 주마다 명목임금이 크게 차이날 수 있는가의 의문이다.

(미국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하다)



이런류의 세계경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책을 읽을때마다 생각하는건, 

그 게임에 참가하는 각 객체들이 정상적이고 속임수를 쓰지 않으며 정의롭다는 가정들이 깔려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IMF 가 과연 책에서 정의하듯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금융을 관리하고 리스크를 통제하며 경제발전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내고자 할까?

뭐, 이런 근원에서 출발하면 대부분의 세계경제의 현황을 다룬다는 경제학 책들은 음모론 책이 되어야 하니 더 이상해지긴 한다.

그럼 이제.... 상투적인 문구로 시작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위치는 항상 공격받고 있으며 (누구라도 그런 불로소득의 가치를 마다하지는 않을것이다) 아마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만일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는다면 그건 이세상의 경제학적 대격변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작가에게 한가지 물어보고싶다. 그래서... 미국은 (달러는) 절대선이며 정의인가?

논지가 좀 왔다갔다하는것 처럼 느껴지는게 착각인가...



나는 작가의 IMF 에 대한 인식에서 세계정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것처럼 느껴진다.

그런점에서 p301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의 주장에 더 마음이 간다.

작가는.. 기축통화라는 위치가 정의나 효율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로소득의 헤게머니 싸움이라 생각돠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로소득를 없애기 위한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기득권을 가진자는 결코 내려놓지 않을것이다.



10장의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11장의 불확실성 같은 장은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다만, 책 전체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금에 대해선 좀 그렇다.

금이라는 물리량이 인간이 만든 가상경제를 통제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력에 인간을 연결하는건 아닐까... 

그건 다시 가상으로 대체한다면 형식적으로 볼때 비트코인이랑 다른건 또 뭔가 싶다.



뭐, 주절주절 희한한 개인생각들을 적어넣었지만, 여튼 2015년 아마존 선정 최고의 책이라고 한다. 그러니 뭐.... ^^;;



Posted by 너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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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 이야기.

도서/시 2016. 7. 12. 21:48

세 종교 이야기
국내도서
저자 : 홍익희
출판 : 행성:B잎새(행성비)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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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는 동일한 신을 믿는다.
기독교가 예수를 선지자라 한다면 이슬람은 수많은 선지자중에 무함마드가 가장 뛰어나다 하고 유대교는 선지자가 오지 않았으며 그가 오는날 휴거가 일어나고 모든 인간이 심판을 받는데 구원받을수 있는건 오로지 유대인이라 한다.
그리고 가톨릭의 부패에 대한 반성으로 개신교가 분리되고...
이정도까지는 흔한 상식이다.

그런데, 사랑을 으뜸으로 친다는 그 신을 믿는 종교들은 왜 그렇게 나뉘었으며 서로를 적대시하고 오늘에 이르렀는가 라는 의문을 추가로 가지게 된다면 이 책은 참 적절한 책이다.

제목부터 종교로 시작하지만, 딱히 어떤 종교를 전파하거나 이해시키려는 것은 아닌것으로 보이는 책인데 종교학자로서의 접근보다는 사회과학자로서의 접근법을 택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보이기도 한다.. 라는 애매한 표현을 쓴 이유는, 종교를 목적으로 하는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저에는 종교에 대한 '너무' 따뜻한 시선이랄까... 기본적으로 어떤 종교의 신자같은 느낌을 주는 부분들이 (특히 책의 초중반에) 산재한다.

딱히 그런 스탠스를 취해야 할 이유는 모르겠지만, 설명의 근간에는 경전의 큰줄기들을 사실관계처럼 전제하고 넘어가는듯이 보이는데 신자가 아닌 나 같은 독자들의 입장에선 특별히 거북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으응? ('ㅅ');;; 하는 의아함이 살짝 남는다.

모세오경과 성경, 코란 등지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하나로 이어지는 어떤 신에 대한 이야기의 장대한 역사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꽤 재미있는 책인데 처음에는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과 종교적 고찰이 뒤섞이다가 후반부에는 왠지 이야기가 튀어선 유대인에 한정된 이야기로 귀결되는 측면도 좀 재미있는 구석이다.

뭐, 어떤면에선 필연적이기도 한데 기독교가 근현대사에선 신정분리의 종교라면 이슬람은 신정일치의 종교이고 유대교는 딱히 그걸 신정분리라고 해야할런지는 모르겠는 정도인데 이러한 종교들이 부딪힌 이력이 바로 중동 그자체의 역사와 다름이 아닌 부분이 있기 때문이고 그 중심에 이스라엘, 즉 유대인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을 이해하기에는 이 책은 꽤나 중요한 사실은 종교를 건드리고 가는 반면에 그 이외의 다른 요소들은 지나치는 바, 중동 해설서라기 보다는 역시 종교와 유대인에 관한 책이라 해야할 것 같다.

초중반은 종교의 역사와 함께 중세의 역사를 엮어가다가 중반 이후에 주제가 변화하는 느낌을 주는데, 최근 2차대전시의 유대인에 이르는 유대인 학살의 역사. 그리고 이슬람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갈등. 그리고 종반부는 결국 유대인의 역사로 귀결되는 느낌이다.

이자를 금한 기독교였지만 현실적으로는 금융이 필요했기에 이자를 인정한 유대교를 믿은 유대인들이 금융가가 될수있었고 성경을 일반인들이 해석하지 못하도록 문맹을 권장한 (?)정책에 반해, 유대교는 개개인이 성겯을 해석해야 하는 종교인 바 모든이가 글을 아는 특수계층이 되었고, 서로 적대시하는 기독교와 이슬람세력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하며 나아가 중세에 열악한 환경속에서 정보교환을 통해 아비트라지 (차익거래) 를 하는 부분들은 현대금융의 모태라고도 할것이다. 
결국, 그 배경이 그동안 그토록 숱한 박해를 받은 특수성의 원인과 맞물리며 지금의 유대상권으로 이어지는걸 쉽게 이해할수 있다.

이 책의 433p에 나오는 마크트웨인의 이야기는 그런 유대인들의 역사를 농축했다 말할수 있겠는데 그건 유대인이 나쁘다 좋다의 개념도 아니고 그냥 유대인에 대한 당시의 시대적 인식이 그렇다 라는 서술이다, 당연히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당성이나 근거를 제공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반면, 그게 시오니즘을 정당화 할수고 당연히 없다.

한편 오로지 세 종교의 발현과 차이에 주안점을 두다보니 개별적인 종교만의 역사들은 기록의 대상이 아니다. 예를들면 가톨릭이 부패해선 마피아와 연결되었던 과거라던가... 식의, 개별적인 사안들은 관심없는 책이고 오로지 각 종교간에 이어지는 역학관계와 그 매개체로서의 유대인을 다룬다.

이 책을 덮으며 궁금해지는 점은... 과연 신자들은 이 책을 읽을수 있을것인가? 하는것과 읽는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것이다.^^;


Posted by 너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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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국내도서
저자 : 캐스 선스타인 / 이시은역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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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 선스타인은... 우리나라에서 꽤 잘팔렸던 넛지 라는 책을 쓴 사람이다.

작자 자체는 꽤나 유명한 사람인데 법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 약간의 철학의 영역을 가미해 그보다는 좀 더 넓은 범위를 넘나든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 왜 음모론이 들끓는가 


2장 우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가-제2권리장전 


3장 ‘잘못된 두려움’을 비용-편익 분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4장 보상금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는가 


5장 동물의 권리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6장 결혼할 권리와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7장 미국은 기후변화 취약 국가에 보상해야 하는가 


8장 종교 집단의 성차별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9장 신진보주의가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가 


10장 거대 논쟁보다 작은 한 걸음, 최소주의 


11장 경청하고 배려하는 중간주의 


이 책을 읽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일부분은(7장 기후변화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자기변론적으로 읽혔고 또 일부분은 논지가 일방적인 논리비약처럼 다가왔다.


책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단점이 두드러진 경우라고도 생각되는데 이러저러한 반론이 머리속에서 꼬리를 물다보니 대체적으로 쉽게 주장들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는 부분이 좀 그렇다.


하지만, 이는 또다른 관점에서 책이 인간을 다루고 또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의와 진실을 획일적으로 정하지 못한다는 속성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을것이다.


어떤 부분은 놀라운 주제와 접근이기도 해서 (8장의 비대칭적 논제라던가...) 단순히 손에서 놓아버릴 책은 아니었는데, 5장 같은 경우는 KTX 도룡뇽 소송이 생각나기도 하고...


9장의 논지는 신진보주의의 정책이라는 것들이 왠지 보수온건파가 주장하는 변형된 시장이론 (신자유주의가 아닌 보수파의) 정도라고 생각되는 점에선 식상하기도 했다. 


반면 10장의 최소주의 같은 것들은 역시... 정통 법학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작자의 이야기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들이 말하는 바는 내겐 꽤나 중요하고도 신선했다.


과학적 사고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여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할것인데 이런 과정의 결과물이 반드시 맞다고 할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논리적이다 라는 말을 붙여줄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느 부분은 적극 동의해 빠져들다가도 또 어느 부분에선 정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하튼, 여러모로 내겐 특이하게 다가온 책이기도 했는데.. 전체적으로는 과연 이사람이 한가지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것인지에 대해 좀 의문스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정도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본것 만으로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ps. 원제는 음모이론들과 그밖의 위험한 아이디어들.. 정도인거 같은데 번역제목은 무슨 의미인지 추측이 안된다.

애당초 작자가 말하는 최소주의니, 중간주의니 하는 것들은 결국 진실조차 다양성을 가지는 특성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봐야 할것 같은데...

뭐, 그런 의미를 담았다고 해도 무리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뭔가 내용에 대한 대표성이 드러나 보이진 않는다.


Posted by 너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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